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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11월 1일(시월의 마지막날)

어릴 때부터 음악에 관심이 많았다. 지금처럼 접할 수 있는 미디어가 많았으면 무덤덤하게 소리를 지나쳤을런지도 모른다. 오로지 라디오에 의존했던 시절이라 심심함과 즐거움을 동시에 누리는 최고의 놀이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나 악기의 모듬 소리에 귀기울이는 시간이었을 거다. 우리 고모가 좋아했던 동백아가씨, 바다가 육지라면, 잘했군 잘했어를 따라부르기도 했고 우리 고모부가 호두 두 알을 부딪히며 읊던 청산리 벽계수야를 수도 없이 들었지만 물리지 않았다. 친구 안나집에 놀러가 엘비스프레스리가 기타를 두드리고 다리를 훌렁훌렁 하며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노래하는 텔레비전의 신비함을 경험 했다. 친구 고화가 자기집에 신기한 것이 있다고, 주황색 네모난 전축이었는데 검은 판에 바늘을 얹으면 빙글빙글 돌며 노래가 ..

여행 이야기 2026.11.01

2026. 10월 29일(시월 하루)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엷은 비 속에서 작별을 하고 있다. 칠전동 가는 길에도 퇴계동 가는 길에도 노랗다. 의암호 카약 타는 곳 근처에는 마로니에 나무 대여섯 그루가 있다. 제법 오래 되었는지 기둥이 굵고 높이가 있어 여름엔 그늘이 되어주고 가을엔 노란 단풍이 가슴 설레게 한다. 그 중 한 그루는 이파리가 온전한 채 물이 들었는데 그 아래 들어가 한참이나 서 있었다. 햇빛 속의 물든 마로니에 잎들이 투명한 노란빛으로 얼굴을 색칠했다. 어감이 좋아 작품에 마로니에를 많이 쓰는 줄 알았는데 허영이 아니라 값진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음을 이제서야 안다. 어디까지 클 지 모를 미루나무 또한 묘한 여운을 남긴다. 우리 아파트 놀이터에 있는 화살나무 잎을 보며 크림슨레이크에 징크화이트 몇 방울 섞으면 저 잎색이 되겠..

일상 2026.10.29

2026. 10월 15일(시월 하루)

겉옷 하나만 챙기면 어디든 좋다. 멀리서 보면 알록달록 눈에 쏘옥 들어오는 단풍잎들이 가까이서 보면 몸부림치듯 색칠을 하고 바삭하게 말라가고 있다. 비바람이 없는 가을은 그새 같으면 빨갛게 몇 잎 달랑 달고 있을 벚나무 잎들이 숱이 많아 반은 나무가지에 반은 낙엽이 되어 색다른 맛을 자아낸다. 이렇게 풍성한 잎을 단 시월의 벚잎을 보는 건 처음이 아닐까 한다. 지금껏 보아온 것들이 예전의 그것이 아닌 다른 것으로 변하거나 바뀐 것들이 하나둘이 아니건만 이래도 되나라는 생각만 자꾸 든다. 그래도 가을이라고 잠깐의 시간, 하늘이 푸르고 막바지에 이른 들꽃도 아련하고 담쟁이 덩굴이 붉게 물든 돌담옆을 걷자니 뒤섞인 감정이 회오리 친다. 얼갈이배추 몇 단 사다 데쳐 시레기 만들고 무 두 개 생채 하고 그동안 ..

일상 2026.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