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2025. 1월 20일(18일 구례장날)

꽃그린이 2025. 1. 20. 16:20

엊그제 토요일 자동차를 세워만 두어 운전을 해야할 것 같다고 하기에 모처럼 장거리를 다녀올까 아침부터 여기저기 찾아댔다. 이제 장거리라는 의미도 한 시간 정도의 거리를 의미한다. 담양을 갈까, 벌교를 갈까, 하동을 갈까, 집을 나오면서도 갈 곳을 정하지 못하고 일단 차를 탔는데 우리가 가면 어디를 갈까 구례가 자동 선택지가 된다. 우선 점심을 해결하고 연기암을 가기로 했다. 냉천리 우리밀칼국수에 가서 곱배기로 먹었다. 식당 여주인이 곱배기 둘을 주문하니 그런 사람이 많지 않은지 한 번 다시 본다. 그러더니 우리가 주문한 양보다 더 많이 주었는지 너무 많이 담은 것 같다고 천천히 드시라고 한다. 내가 이 집을 다닌 지가 십 년이 넘었는데 먹고나면 항상 면이 부족한듯 하였다. 면추가가 있다는 걸 요새서야 알았다. 가게가 항상 만원이니 힘들어도 주인부부의 얼굴이 밝다. 배불리 먹었음에도 기운은 충전되지 않고 자꾸 주저앉으려 한다. 연기암은 포기하고 마침 오늘 구례 장날이니 장이나 한 바퀴 돌자고 했다. 시골장이긴 하나 아직 구례장은 제법 크고 사람소리로 시끌벅적하다. 튀밥 튀는 소리도 자주 들리고 버섯이나 더덕 파는 곳도 많고 갑오징어가 많이 잡히는지 큰 갑오징어가 검은 물을 뒤집어쓰고 있다. 대목장이라 그런지 풍성하다. 미세먼지는 많으나 햇빛은 따뜻하여 장을 벗어나 마을길로 접어들었다. 이가원 중국집 골목으로 올라가는데 어떤 아저씨가 어디를 찾느냐고 물어본다. 왜그러시냐고 물으니 구례가 처음이면 여기 음식점이 맛집이니 한 번 가보란다. 구례토박이 아저씨로 구례를 엄청 사랑하시나보다. 고맙다고 인사하고 걸으면서 웃었다. 이가원은 몇 번을 가서 짬뽕을 먹었고 토박이는 아니지만 구례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내기나 하자고 할 걸 그랬나. 단독주택이 이렇게 많이 모여 있는 곳이 또 어디에 있을까. 골목골목 다 돈 것 같았는데 성당 윗길은 처음 걷는다. 현충원까지 걷다보니 맨날 멀리서 보았던 저수지둑이 앞에 있다. 둑이 웅장하게 얼마나 높은지 저수지길로 올라왔다. 정말 에게게다. 아주 깊고 시퍼런 물이 있을 줄 알았는데 거창한 둑하고는 거리가 있는 조그마한 저수지가 살얼음으로 덮여 있다. 물이 넘실넘실 했더라면 무서웠을텐데 작으니 고요하고 귀엽기까지 하다. 다시 걸어걸어 장으로 와 깨갈이 도기를 만 원에 사고 호떡을 사러 줄을 섰다. 이틀이 지났음에도 구례장을 떠올린 것은 아마도 이 호떡집 때문일 거다. 부부가 하는 가게인데 한쪽에는 남편이 집에서 만든 유과를 판매하고 아내는 호떡을 만들어 판다. 으레 장에 왔으니 거쳐야하는 코스이기에 줄을 섰는데 아저씨가 보는 사람마다 오늘은 우리 아들이 와서 도와주니 한결 편하다고 한다. 호떡을 받기까지 그 소리를 열 번은 들은 것 같다. 아들이 주문을 받고 돈을 받고 호떡을 포장해 준다. 서글서글한 눈매에 인사도 잘하고 여느 아이들과 달리 정성껏 엄마를 돕고 있다. 그러다 호떡 반죽을 얹다 기름이 엄마 얼굴에 튀었다. 엄마 괜찮냐며 금방이라도 울 것 같다. 돈이 얼마나 벌리는지는 모르겠으나 쉴새없이 빚어대는 호떡에 일을 끝내고 집에 가면 다리가 탱탱 부어있을 것이다. 아마도 남편이 저녁밥을 지을 것이고 아들은 엄마 다리를 주무를 것이다. 호떡 대기줄에서 그 가족들을 보며 든 생각이다. 저런 사람들은 어딜 가도 살아남는다. 허황되거나 허풍스럽지 않고 자기길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살아남는다. 부모가 저리 선하게 살아가는데 그 아들이 어딜 가겠는가. 그 집 저녁은 서로 다독이는 소리에 웃음이 그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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