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으로 터전을 옮기면 서울이 가까워 종종 서울에 갈 수 있겠다는 게 이사를 하는 장점 중 하나였다. 한 나라의 수도인 만큼 둘러볼 곳도 많고 찾아보면 문화적 혜택도 누릴 기회가 많아 괜히 서울이 아니라는 걸 겪어보고 싶었다. 순천에서 예술의 전당 공연을 한 번 보려면 교통비에 숙소까지 큰맘 먹어야 할 수 있는 일이어 실행하기가 쉽지 않았다. 마침 오월 말일 예술의 전당에 손열음과 함께 하는 캐나다 국립아트센터 오케스트라 음악회가 있어 예매를 해뒀었다. 이제 생생하게 라이브를 즐기게 생겼네. 마치 코앞에 서울이 있기라도 한 양 느긋하게 움직였다. 오후 한 시 이십 분에 집을 나와 남춘천역에서 두 시 사분 아이티엑스를 타고 청량리역에서 내렸다. 어떤 기계를 이용하면 나가는곳으로 가지 않고 내린 곳에서 바로 경의중앙선을 탈 수 있는 것 같은데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시간 충분하니 원시적으로 나가는곳으로 큐알코드 찍고 나갔다가 다시 티머니를 찍고 나온 길을 다시 들어가는데 왜 당당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모른다. 반복하는 일일지라도 찾아만 가면 되지 애써 위로하며 옥수역에서 내려 3호선으로 갈아타고 남부터미널에서 내렸다. 남부터미널은 계단이 어찌나 많던지 헉헉거리며 올라와 표지판을 따라 뜨거운 볕속을 걸어 예술의 전당에 도착했다. 생각 같아서는 우아하게 차도 한 잔 마시고 예술의 전당 한 바퀴 산책도 할 줄 알았다. 어중간하게 삼십 분쯤 남은 시간은 여유와는 거리가 멀었다.
어디서 다들 모여 들었는지 엄청난 사람들 속에 눈에 띄는 인물이 보였다. 전직 외교부장관이었던가. 지금도 그와 걸맞는 위치에 있었다면 운명이 바뀌었을텐데 누가 밀어냈는지 본인이 선택했는지 모르겠으나 얼른 생각나는 말은 운이 참 좋았네. 티켓은 본인이 구매했을까 쓸데없는 오지랖을 뒤로 하고 연주장으로 가는데 여기도 올라가면 계단 끝인가 하면 또 계단 이거 할 짓이 못되었다. 매번 구매하는 C석의 위치는 가파르거나 구석진 곳이었다. 젊은이들 속에 파묻히는 좌석에 앉았다. 손열음 피아노 치는 것도 보고싶었고 베토벤 5번 교향곡 전악장 연주를 한번은 꼭 보고싶었는데 대박이었다. 보통 앵콜은 많아야 두 곡인데 네 곡이나 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관객들의 환호 속에 지휘자도 그냥 돌아설 수가 없는 광경이 참 인상적이었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베토벤 운명 1악장은 얼마나 가슴 뭉클했으면 1악장이 웅장하게 끝나자 박수를 치는 에티켓에 어긋나는 광경도 잠깐 있었지만 황홀했다고나 할까.
작년엔가 유자왕이 여기서 연주를 했는데 앵콜곡으로 여러 곡을 하는 진풍경이 있었다고 한다. 보통 클래식 하면 다른 나라에서는 올드한 사람들이 주관객인데 유독 한국은 젊은이들이 많아 활기차다는 것이다. 소리죽여 감상하다 연주가 끝나면 터지는 함성에 연주하는 사람들이 되돌려주는 문화가 우리에게 있는 것 같다. 젊음 속에 내손바닥이 뻘겋게 된 날이다. 연주시간이 길어져 하마터면 돌아오는 기차시간을 놓칠 뻔했다. 여덟 시 오십 이분 기차를 타고 남춘천역에서 내려 걸어걸어 집에 오니 열 시 반이다. 어떻게 잤는지 기억에도 없이 눈 뜨니 유월 아침이다.
유월은 어떤 색으로 살아볼까. 유월은 어떤 하늘에서 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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