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는 비가 많이 오는 모양인데 여기는 비온다는 예보 시간하고도 비껴나가 언제 비가 뿌릴 건지 종잡을 수가 없다. 갑자기 내릴 것 같아 우산만 필수인 그런 흐릿한 하늘이다. 큰 나무가 많고 물이 많아 얼핏 시원할 줄 알았는데 아랫녘보다 더 더운 것 같다. 자연의 변화를 알 수야 없지만 순천에 살면서 항상 감사했던 게 순천의 날씨였다. 기복이 심하지 않고 자연재해도 덜한 평온한 곳 그래서 이곳을 떠나면 날씨가 그리울 거라는 생각을 항시 하고 살았다. 봄가을은 어디나 다 살기좋으니 별 생각이 없다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하는가 싶으니 순천생각이 난다. 변두리 내집은 넓어서 맞바람 치는 창문을 열어 놓으면 밤꽃향기를 조용히 맡을 수 있었다. 아직 적응이 덜 되었나. 아파트 밀집지역 신시가지에 오니 창문을 열면 온갖 잡음이 다 들려온다. 주말에 장을 봐온 야채들을 한꺼번에 씻으려고 하니 부엌이 비좁다. 그날그날 필요한 만큼만 씻으면 될텐데 씻는 김에 해버리는 게으름의 욕심이 잠시 힘들게 한다. 이 집을 두고 좁다고 하면 안 되지 충분히 널찍하지 우리 나이엔 더 좁은곳에 살아야한다는데 되짚어보면 나는 아직 마당있는 주택에서 큰 다라이에 열무를 헹구는 꿈을 꾸고 있다.
네 시간만에 돌아와 앉았다. 우리 어머니표 얇은 무깍두기를 한 통 담았고 오이냉국과 오이나물을 만들고 점심으로 감자갈치조림을 만들었다. 손대지 않고 밥상을 받는 사람은 어떨지 몰라도 음식을 만든 사람은 정작 먹으려고 하면 입맛이 달아난다. 그럼에도불구하고 맛의 평가가 달갑지 않을까봐 전전긍긍 하는 나는 누구일까. 많이 벗어난 것 같아도 어떨 때 보면 그대로이다. 생긴대로 살아야지 달아난다고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도루묵이고 돌아보면 제자리인 걸. 제법 많은 양의 점심을 먹었음에도 꼭 먹지 않은 것 같은 내 뱃속이나 몇 시간 부엌일을 정신없이 해댔음에도 별것없는 반찬통이나 진배가 없다.
열린 방충망으로 비가 흩뿌린다. 갑자기 비가 세게 내린다. 이부자리에서 막 털고 일어났을 때처럼 몽롱하다. 쉬라는 신호가 여러 군데서 온다. 눈이 그렇고 손가락들이 그렇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이 생각나는 비 내리는 유월의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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